
미국의 사모대출 부실이 확산되면서 금융 불안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대체자산운용사인 블루아울 캐피털이 주력 펀드인 OBDC 2에 대해 환매중단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사모대출 부실 우려는 세계 3대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까지 환매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한도를 설정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최근 사모대출 펀드가 설정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담보가치를 하향 조정하며 부실 위험을 선제적으로 반영했다. 이 회사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더 많을 것”이라며 사모대출 시장의 잠재적 부실 위험을 강하게 경고했다.
사모대출 사태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부실이 알려지자 개인투자자들이 경쟁적으로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발생했다. 일례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의 비상장 신용 펀드의 경우 환매를 요구한 규모가 올 1분기에만 전체 자산의 7.9%에 이른다. 자칫 뱅크런(예금주들이 한꺼번에 몰려 돈을 인출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경우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어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금융감독원도 지난 4일 주요 증권사 임원을 모아 긴급 간담회를 갖고 위험을 점검했다.
코로나 때 IT기업에 투자한 사모펀드 부실화
사모대출은 자산운용사가 고액자산가들로부터 사적으로 투자금을 모아 펀드를 설립한 뒤 이 돈을 기업에 대출해 준 것이다. 사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맹점이 있다. 최근 환매로 문제가 되는 사모대출은 코로나19 때인 지난 2020~2023년 사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0%대까지 낮추며 대규모 양적완화를 했을 때 투자한 펀드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조성된 거액의 펀드들은 당시 유망 투자처로 부상한 소프트웨어 등 IT기업에 대거 투자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들 기업 대부분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펜데믹 종료와 함께 부실의 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화상회의와 온라인 협업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줌(Zoom)이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거액의 투자를 받았지만 코로나가 끝나자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며 경영난에 빠졌다. 특히 최근 AI(인공지능)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몰락의 길로 빠트렸고, 이들 회사에 투자한 펀드들은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자료사진
미국 사모펀드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운용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개인투자자도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상장펀드)의 한 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 33% 손실을 입었고, 블랙록이 운용하는 ‘TCP캐피털’은 39% 가치가 폭락했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지난해 사모대출 부도율은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부도 외에도 이른바 ‘그림자 부실’로 불리는 이면의 실질 부도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이자를 채권으로 돌리는 편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실규모 최대 3조1천억 달러 추정
사모대출은 대부분 만기가 5~7년이어서 지난해부터 올해와 내년에 만기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는 공식 집계가 없어 펀드대출의 부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최대 3조1천억 달러(한화 약 4,658.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2007년 글로벌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규모는 약 1.5조 달러(한화 약 2,254.1조원)로 집계됐다.
미 연준은 지난해 5월 이미 보고서를 통해 2024년 2분기 기준 미국의 사모대출 규모를 1조3천억 달러(한화 약 1,953.6조원)로 추산하면서 부실을 전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상품의 특성 때문에 정확한 규모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순간 누적된 부실이 터지며 대규모 환매로 이어지면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 즉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 등 최근의 가상자산 급락과 지난 1월 30일 은 선물가격의 폭락(-31.4%) 등 최근 금융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이 사모대출 문제에서 파생된 이상징후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환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익을 남긴 우량 채권을 먼저 매도하면서 이들 자산가격의 변동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올들어 한국증시에서 외국인들이 끊임없이 매도 행진을 이어 가는 것도 같은 이유란 분석이 많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코스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수익이 커지자 우선 매도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자료사진
지난해 5월 사모대출의 위험성을 지적한 연준 보고서는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기존 금융시스템이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시스템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게 봤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돌발변수로 떠오른 이란전이다.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급등한 원유 가격이 장시간 지속되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겨 금리 인상을 압박할 수 있다. 실제 최근 미국 채권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2.4%로 여전히 높은 상태에서 3월 이란전의 영향이 반영되면 원유가격 급등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지수는 훨씬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전 돌발악재에 경고음 잇따라
이 때문에 하반기에 0.25%씩 한두차례 인하가 예상됐던 미국의 기준금리도 최근 오히려 장기동결이나 추가 인상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2월 부진한 고용지표(9만2천명 감소)로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이란전쟁으로 동결이나 인상이 불가피해 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금리인하를 예상하던 시장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부실대출 규모는 급격히 커지면서 IT기업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펀드환매를 더욱 가속화시켜 뱅크런을 촉발할 수 있다. 더구나 환매 자금 마련을 위해 이미 우량 채권을 매도하고 회수가 어려운 부실 채권을 남긴 자산운용사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취약해져 연쇄 부실로 번질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처럼 사모대출 부실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가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중동전쟁의 악재까지 겹치며 시스템 위기가 현실화될 위험이 훨씬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재, 지금의 시장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유사하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넷 전략가는 최근 현재의 자산 가격 움직임이 2007년 중반에서 2008년 중반 사이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고 했다. 2008년에도 유가가 배럴 당 147달러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금리가 인상되면서 시장이 붕괴했는데, 현재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이 이를 재현할 수 있다고 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도 2008년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같은 불확실성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라고 하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과도한 공포를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미리 대비하기 때문에 위기를 사전에 막는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가혹한 고통을 수반하는 금융위기는 결코 발생해서는 안되지만 혹시라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 대비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때마침 우리 사회에 주식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금융시장의 이상 징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시기에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빚을 내 투자하는 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DEMO] 고객요청 배너 - 기사 노출](/upload/banners/demo-articl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