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엠 칼럼] 트럼프·푸틴 유착에 힘실리는 김정은](/upload/articles/3289/title-image-67b35c4bcf37f.jpg)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18일 사우디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는다.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을 하루 앞둔 17일 이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핵심 의제로 3가지를 언급했다. ‘러시아와 미국의 전반적인 관계회복’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 ‘정상회담 조율’이다.
트럼프는 미국 언론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 할 정도로 항상 푸틴을 좋게 평가하고, 러시아에 대해 칭찬만 해 왔다.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우크라이나 침공 등 민감한 사안에서도 러시아를 비판하거나 대립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집권 초기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최우선에 두고 서두르는 것도 그 연장 선상이다. 이날 고위급 회담에 이어, 가까운 시일 안에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이 예상된다. 전임 바이든 정부 때 악화됐던 두 나라 관계는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만 된다면 트럼프 집권 기간 미러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밀월 관계가 예상된다.
문제는 미러 관계 개선이 곧 북한과 미국의 관계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국제 질서를 모색하는 트럼프는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북미 협상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푸틴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강력한 조력자이자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파병을 계기로 러시아와 혈맹관계로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푸틴은 트럼프, 김정은 모두와의 호의적 관계를 활용할 경우 북미 협상에서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
현재의 북한은 북미 회담이 열렸던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는 많이 다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와 발사체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핵보유국 표현을 사용할 수준에 도달했다.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계기로 푸틴과 밀착한 김정은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윤곽을 잡으면 트럼프의 다음 상대는 북한이다. 임기 초반 힘이 실릴 때 외교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핵보유국을 천명한 북한은 미국과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면 '군축협상'을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 김정은은 현 수준에서 핵무기 추가 생산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북미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방안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당선되자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 북미간 '스몰딜'이 추진될 것이란 분석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를 비롯한 국제 조약과 국제규범에 대한 북한의 광범위한 위반과 묵살을 용인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지만 트럼프의 안하무인식 외교에는 거칠 것이 없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로 인해 우리가 직면하게 된 외교안보 리스크다.
트럼프가 북미 관계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되면 북일관계 개선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납치 일본인 문제 등에 막혀 있긴 하지만 일본은 누구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다. 만약 북미 협상이 진전되면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경쟁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남한이다. 북한이 한반도 두 개 국가를 선언하고 남측과의 모든 연결 고리를 단절했다. 현재 남북은 어떤 접촉 점도 없다. 지금 상태에서 북미 협상이 재개된다면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 외에 우리의 입장을 반영시킬 수 있는 공간이나 협상의 지렛대가 별로 없다. 과거 북한의 외교전략이던 이른바 ‘통미봉남(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은 단절한다)’이 현실로 구현된 셈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면서 협상에서 배제되는,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하고, 피하고 싶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15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한미일 외교장관이 회담을 갖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은 별도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대화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별도 성명을 통해 대화에 방점을 찍은 것은 그만큼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실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미 행정부 주요 자리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관여한 인물들로 포진해 있다.
그동안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외교든 무역이든 동맹의 가치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날 사우디에서 열리는 미러 고위급회담에서도 미국은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를 논의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배제했다. 우크라이나와 EU는 강한 우려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 방식을 고려할 때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큰 틀의 초안을 구상한 뒤 우크라이나와 EU가 여기에 따르게 하는 방식으로 종전 협상을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의 관계는 단절돼 있고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도 불편한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 핵을 비롯해 향후 한반도 질서를 재편하게 될 북미 협상에 당사자로서 과연 얼마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가 배제된 채 전승국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한반도 운명은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겐 뼈아프면서 이 시점에 되새겨봐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한반도 냉전 질서를 뒤바꿀 수 있는 북미협상에 우리가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트럼프와 동맹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이고,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정부는 정말 경각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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