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환의 안보논단]김정은이 남한의 '北 수해 보도'를 강하게 비난했다...왜?

[이일환의 안보논단]김정은이 남한의 '北 수해 보도'를 강하게 비난했다...왜?

자료사진/에프엠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북한의 수해 피해에 대한 우리의 언론보도를 주민들에게 직접 공개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남한에 대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적’이자 ‘쓰레기’로 지칭하며, 주민들에게 대남 경계심을 고취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대적 인식’과 ‘대적 감정’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이는 그간의 관행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며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김정은은 수해현장 방문 연설에서 수해 피해의 규모, 사상자 수, 구조대의 사고, 북한 정권의 늑장 대응 등 우리 언론에서 언급한 내용의 많은 부분을 주민들에게 공개하면서 동시에 이를 전면 부인했다.


이유는, 수해 지역 주민들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자강도, 양강도, 평안북도는 중국 접경지역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외부로부터의 정보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국가보위성 등 체제수호기관을 동원해도 늑장 대응 등에 대한 외부 사회의 보도 내용 노출을 막기 어렵고, 자칫하면 상당한 동요를 유발할 우려가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일종의 선제적 대응이다.


두 번째는 수해 관련 우리의 언론보도를 거짓이자 정치적 모략에 따른 선전으로 호도하며, 이 사건을 ‘대남, 대적 인식’을 강화하는 '사상교양' 자료로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2국가론’을 제시하기 이전까지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에서도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어느 정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이 다시 대남 비난을 재개한 것은 2020년 3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김여정의 발언을 통해서였다.


이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대남 비난 발언의 수위와 범위가 계속 높아지기는 했으나, 김정은의 ‘2국가론’이 제시되기 이전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적대 입장을 취한 인물은 김여정과 김영철, 이선권 등 대남 기구 관련 인사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우리의 수해 관련 보도 내용을 대남 대적 인식을 강화하는 ‘사상교양 자료’로 사용할 것을 지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모든 ‘당조직, 근로단체 조직, 교양망’ 속에서 대남 대적관을 확산하기 위한 ‘사상교양자료’로서 남한 언론의 수해 피해 보도를 사용하라는 주문은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 속에서 대남 대적관을 확대· 강화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적관을 강화하기 위한 문화 부문 개편작업도 ‘사상교양’ 개편을 중심으로 강화/확대될 것임을 시사한다.


부연하면, 김정은은 수해피해와 남한의 수해보도를 ‘2국가론’을 중심으로 한 북한 정권의 대남 적대화 노선을 정당화하는 재료로 삼으며, 일회성이 아닌 장기 슬로건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남한을 ‘교전국’으로 선포한 이후 민족 동질성의 부정, 영토 변경, 호칭 변경, 관련 기관 폐쇄 조치 등 남북한 사이 특수 관계를 부정하고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2023년 12월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헌법에 이 같은 내용을 명시할 것임을 시사하기 까지 했다.


다음으로 피해 주민을 평양에서 보호하고, ‘아동’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노동신문 등은 수재민들의 평양 도착, 입주, 수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며 김정은의 ‘애민정신’을 매일같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아동’에 대한 배려를 크게 부각하고 있다.


이는 ‘장마당 세대’ 이후 북한 젊은층 사이에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민심 이반을 우려한 북한이 ‘새 세대’에 대한 전폭적 관심을 선전하며 불안정한 민심을 수습하려는 정치적 판단이다.


이번 수해에 대한 김정은의 대응조치는 ‘사상’이란 상부구조가 경제라는 하부구조를 확실히 제압하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이념적 분열, 사상적 분열이 경제적 균열 보다 더 심각하게 국가적 균열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북한 선전 전략가는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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