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환의 안보논단]한미 관계가 좋다는데 '美 FBI는 왜 테리를 기소했을까?'](/upload/articles/436/title-image-66989118024fb.jpg)
미국 검찰이 미 중앙정보국(FBI)출신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54)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사건은 우리 국가정보원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최대 우방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로, 미국 FBI가 10여 년 간 미행감시 등 각종 수사기법을 통해 증거를 모은 뒤 뉴욕남부지방 검찰청이 기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테리는 CIA 분석관 출신으로 한반도 안보 전문가다. 적용된 혐의는 미국 주재 한국 공관에서 근무하는 국가정보원 요원(I/O)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2,845달러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코트, 2,950달러 상당의 보테가베네타 핸드백, 3450달러 상당의 루이비통 핸드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위반도 추가됐다. 이 법은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외국 정부나 기관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경우 법무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정보활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국정원에 '정보실책'의 챔임은 분명히 있다. 다만, 사안이 국가안보에 위해를 줄 중대 사안은 아닌 만큼 ‘정보실패’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CIA 엠벌럼 깃발/에프엠뉴스
이번 사안에는 국정원의 실책과 함께 그 근저에 다른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에서의 정보활동은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정보요원들이 외교부 공식 직책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다. 정보원들은 이를 커버(cover:위장)이라고 한다. 테리를 담당한 정보 요원 3명의 경우 뉴욕 유엔대표부 공사, 위싱턴 DC 주미대사관 공사 참사 등의 직책을 갖고 일했다.
이는 사실상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따라서 주재국의 안보나 자국내 정치 등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한 서로 묵과해준다.
이런 점에서 한미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다고 하는 지금 FBI가 이 사건을 터트린 이유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영향공작'의 차단이다. 영향공작은 주재국 정책결정자나 여론 지도층을 자연스럽게 포섭해 정책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립하도록 하는 공작을 말한다. 일종의 ‘가랑비에 옷 젖는 전략’이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때부터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은밀하게 진행한 ‘영향공작’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당시 중국 정보기관의 영향공작 초점은 “중국은 평화적으로 굴기하는데 목적이 있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을 통해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국력을 강화할 수 있었고, 지금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에 이르렀다.
더욱이 2016년 러시아가 미국 선거에 개입한 ‘러시아 게이트’를 계기로 미국은 영향공작의 파괴력을 또 한 번 절감하면서 이 분야의 색출 작업에 주력해왔다.
기소장에 적시된 테리의 활동을 보면 국가기밀을 빼내서 넘겨준 것은 없다. 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대북관련해서 의견을 밝히는 정도가 전부다. 그러기에 처벌 정도가 강한 ‘스파이법’을 적용하지 못하고 외국대리인등록법으로 기소한 것이다. 영향공작이 목적임을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기관 실적주의다. FBI도 항상 실적에 목말라 한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과시하기 위해 한 건을 터트리는 식이다. 그래서 FBI 실적주의의 희생양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기소장에 부각한 내용에서 불순한 의도를 엿불 수 있다. 주로 고가 명품 가방과 구입 비용을 부각시킨 것은 다분히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과 결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더 크게 주목 받을 것으로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보요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휴민트 기법'이 있다. 통상 협조자를 포섭할 때 구사하는 방식으로 MICE라고도 한다. M(MONEY)은 돈, I(IDEOLOGY)는 이데올로기, C(CONVENTION)는 관습, E(ETHIC)는 민족이다. ‘민족’이란 요소는 중국 정보기관도 애용하는 방식으로, 그 어떤 요소보다 접근하기 쉽고 변절도 거의 없어 장점이 많은 접근법이다. 이 때문에 미국 각급 기관에서 중책을 수행하는 한국계는 항시 FBI의 감시망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된다.
FBI가 한 건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관련된 사안을 터트린 데는 한국 정부 길들이기와 레버리지 확보차원의 전술일 수도 있다. ‘정보협력(정협)’이란 이름 하에 정보기관끼리 정보나 정보판단을 공유하면서도 막후에서는 상대국을 옥죌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 ‘선수들의 또 하나’의 관행이다. 이 사건 역시 이런 계산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은 CIA, FBI와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CIA와 FBI는 서로 알력이 심한 관계여서 CIA하고 잘 지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공수사권 폐지로 혹시 FBI와의 관계가 느슨해지진 않았는지 점검해 볼 때다.
이번 사안의 발생 과정과 상대국의 속내를 떠나 국정원은 대미정보라인 전면 교체 등 해외정보 활동 전반을 다시 점검하여 정보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할 것이다. 테리 사건은 국익 앞에서 우방일지라도 결코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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