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엠칼럼] 진화론의 ‘공평법칙’과 의정갈등

승자의 욕심이 과하면 어느 순간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에프엠칼럼] 진화론의 ‘공평법칙’과 의정갈등

자료사진/에프엠뉴스

진화론의 기본법칙은 '적자생존'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이다.

 

살아남은 종들은 모두 진화를 통해 더 경쟁력 있는 후손을 생산하며 적응력을 키워왔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강하고, 잘생겼다. 사자의 솔기, 닭의 벼슬,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 등등 수컷들은 화려하고, 장식이 많고, 덩치도 크다. 인간이 지향하는 강하고 멋지다는 개념은 이런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암컷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다른 수컷보다 멋지거나, 강하거나 경쟁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에 오히려 불리할 것 같은데도 솔기나 벼슬, 길고 멋진 꼬리, 화려한 몸 색깔 등 거추장스럽지만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것들로 치장을 한다.

 

자신을 가꾸는 이 경쟁을 통해 가장 우월한 수컷부터 암컷의 선택을 받아 후손을 번식한다. 암컷은 가장 강한 수컷을 선택하려는 속성이 있고, 이런 암컷에 선택 받기 위해 수컷은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한다. 인간이 권력을 지향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과정을 통해 생물들은 자연스럽게 보다 뛰어난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다윈이 자신의 저서 ‘종의기원’에서 서술한 이런 진화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여럿 있다. 인간 사회의 ‘일부일처제’도 그중 하나다.


고전 진화론에 기초하면 동물은 강한 수컷이 원하는 만큼 많은 암컷을 차지한다. 이런 진화론 대로라면 인간도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일부다처제가 되는 것이 이론적으로 맞다. 그런데 중동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채택했다. 오랜 기간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공평의 법칙’이라는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해 졌다.

 

두 사람과 10개의 빵이 있다고 가정하자.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이긴 사람이 마음대로 빵을 나눠 가질 수가 있다. 10개를 다 가질 수도 있고 10개 모두를 상대방에게 줄 수도 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게임에서 진 상대방이 거절하는 순간 이긴 사람도 빵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승자는 자신도 빵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상대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우세해진 것은 사회공동체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자 입장에서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순간, 자기 것을 잃더라도 강자의 독식을 용납하지 못한다. 권력이나 부의 독점에 맞서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국가도 경험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이는 나눌 수 있는 빵의 크기를 키우고, 이어 기특권의 독점을 철폐해 배분의 기회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어온 과정이었다.

 

군과, 정보기관, 검찰 등 한때 권력을 향유하던 기관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시대적 요구에 의해 기득권을 많이 내려놨다. 이 과정에 폭력이 수반되면 혁명이고, 투표로 결정되면 민주주의다. 그런데 의료계는 지난 수십년간 예외였다. 오히려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해왔다. 민주화 과정에서 기득권을 강화해온 거의 유일한 직역이 아닌가 싶다.

 

의사는 전문직 중에도 대체불가하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리고 도제제도와 유사한 독특한 교육과 양성과정 때문에 어떤 전문직도 흉내 낼 수 없는 조직력과 단결력을 갖는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된 의료 파업의 위력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엄청난 사회적 파괴력을 갖는다.


의료단체는 그동안 이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정부는 결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사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왔다. 덕분에 의대정원은 정부의 수많은 정책시도를 비웃으며 수십년 동결됐고, 공급 부재 속에 의사는 다른 직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네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불법이다. 불법인 이유는 의사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의사단체는 반대 이유로 감염 등을 내세우지만 세계에서 문신이 불법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걸로 안다. 감염이 간혹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꼭 의사만이 해야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사가 문신 시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의료단체가 문신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상업적 목적으로 바늘이 피부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의사가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많은 기득권들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용시술, 레이저시술 등 지금 의사 면허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수많은 시술들이 비면허나 다른 면허에 개방될 수 있다. 수천년 동안 해왔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문신이 불법에 묶여 있는 이유는 의사면허의 독점을 보호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마 전 국회를 어렵게 통과한 간호법을 두고 의사단체들이 기를 쓰고 반대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다른 국가들 대부분 시행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PA(진료지원)간호사 제도를 불법의 영역에 방치한 것도 간호사의 독자 개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전 의협회장을 지낸 어떤 분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 것은 그동안 정부를 굴복시키며 직역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지켜온 역사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오랜 기간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다. 하지만 의사면허의 기득권에 묶여 수많은 일자리가 사장돼 있다. 일례로, 모발이식을 보자 터키는 모발이식을 국가차원의 관광 상품화해서 돈을 벌어 들인다. 이 나라는 간호사도 모발이식 시술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모발 이식을 위해 이 나라를 찾는다. 


우리는 어떤가? 간호사는 시술도 할 수 없고, 물론 개업도 할 수 없다. 불법을 피해 절개는 의사가 하지만 실제 모발 이식은 간호사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지킨 기득권 덕분에 우리나라는 모든 이공계 성적우수자가 의대를 지원한다. 적성이나 직업에 필요한 자질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적성에 맞지 않으면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는 말이 사실 농담이 아니다.

 

이과 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현상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대단히 위험하고 불행하다. 십수년 전만 해도 가장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은 전자공학과나 물리학과 등을 선택했다. 그 결과 오늘날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 정도를 차지하며 지금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

 

IT 시대에 뛰어난 이공계 인재 한두명이 수천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 개인의 능력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부가가치를 감안하면 의사로만 몰리는 현상은 심각한 자원낭비다.

 

하지만 의료계는 조금의 기득권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그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상까지 받게 된다.

 

‘공평의 법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승자의 욕심이 지나치면 어느 임계점을 지나는 순간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래서 적정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이는 사회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종의 생존’을 결정하는 보다 본질적인 죽고 사는 영역의 문제다.

 

우리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의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발이식, 쌍꺼풀수술, 레이저시술 이런 것들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진짜 인술을 베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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